물리학 -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

    물리학자 집단에 대한 외부인들의 생각은 '자연의 진리를 이해하려는 순수한 사람들'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여기서 '자연의 진리를 이해하려는 순수한 사람.' 이라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진리'란, '이해'란... 단어 하나하나가 명확히 정의하기 힘든 모호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제 겨우 학사학위를 수여받고 아직도 공부중인 꼬꼬마 물리학도로서 건방지게도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어떤 것인지 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먼저 그 전에 자연, 진리, 이해등의 용어에 대한 내 견해를 밝히도록 하겠다. 

    자연...
    자연이라는 단어는 한자어로 '스스로 자(自)' 에 '그러할 연(然)' 자를 사용한다. 중국인들의 자연관이 담겨있는 이 단어는 정말 정확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연은 바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법칙이나 규칙이 담겨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 인간의 오만함은 이렇게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 어떤 법칙이나 규칙을 부여하고 마치 자연 그 자체가 인간 사유의 산물인 법칙과 규칙들을 따르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대표적인 예가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따르므로' 라는 표현이라던가, '우리가 사는 공간은 4차원이므로' 등의 표현이 있다. 자연은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인데 우리 인간들이 만들어낸 법칙들이 자연의 현상을 지배하는 주체가 된듯이 이야기 하는 이런 표현들은 자연의 본질에 대한 착각에서 온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해...
    그렇다면 인간 사유의 산물들인 물리 법칙들은 어떠한 의미를 갖는걸까. 이들은 자연의 메커니즘을 지배하는 원리라기 보다는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이 두 관점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명확히 이야기하기란 쉬운 일은 아닌것 같다. 이는 바로 '이해'에 관한 개념의 모호성에서 온 문제라고 보기에 내가 생각하는 '이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겠다.
    흔히 과학자들을 '어떠한 현상에 대해서나 '왜?(why)'라는 의문을 던지고 호기심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로 묘사한다. 이건 분명 오해다. 과학자들이 자연 현상에 던지는 의문은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라고 봐야한다.
    예를들어 중력을 받고 있는 물체의 운동에서 궤적이 포물선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그게 왜 그래?'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대답은 그게 왜 포물선인가 가 아니라 그게 어떻게 포물선이 나오는가에 대한 답변이 된다. 답변의 시작은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지금 중력 g가 지면에 대한 수직방향으로 작용하고 있잖아...... 이후의 설명들은 물체가 왜 포물선을 그리는지에 대한 답변이라기 보다는 중력 g가 지면에 수직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속에서 어떻게 물체가 포물선을 그리는지에 대한 답변이라고 봐야할것이다.
    또 한가지 예를 들자면 좀 더 명확해질 것 같은데, 양자역학의 체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양자역학은 체계에서 시작해서 체계에서 끝난다. 측정 행위(mesurement)에 의한 파동함수(wave function)의 collaps 라던가, 에너지 고유함수의 특징, 불확정성의 원리등... 학부 과정의 양자물리 수준에서는 정말 이들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양자역학이라는 체계가 어떻게 구성되어있는가를 배우는 과정이다. 대학원 과정의 양자역학도 고전역학의 체계와의 유사성을 통해 이들 체계가 그럴듯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결국 양자역학의 체계를 받아들이고 이런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면 자연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것 뿐, 자연이 양자 역학의 가정과 법칙을 따른다고 말하는것은 어디까지나 선후가 바뀐 이야기라고 본다.
 
    결국 물리학에서 말하는 이해는 어떤 현상의 근본이 되는 원리를 밝혀내는 작업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현상들을 일관된 체계로 설명해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체계로 다양한 힘의 형태를 설명해보려는 통일장 이론이 주목을 받았던 것이고..

물리학은?

    "물리를 공부한다고 진리를 알 수 있을거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물리는 단순히 자연에 대한 모델을 세울 뿐이예요,"

    1학년때 김두철 교수님께서 일반물리 수업시간에 하신 말씀이다. 이 말에 물리학부 학생들 중 상당수가 멍해졌고, 나중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반발하기도 했던걸로 기억한다. 지금은 나 역시 김두철 교수님의 물리에 대한 관점에 상당히 동의하게 되었다. 물리는 그 학문의 진리성 보다는 예측능력 에 초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어떠한 물리법칙도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더 발전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물리는 어디까지나 자연을 바라보는 인간의 주관이 담긴 관점이며 체계이기에 물리학의 가치를 객관성, 보편성의 측면으로만 평가한다면 다른 학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성, 고고함, 순수함의 환상을 던져버린 물리학은 여전히 나에게 매력적인 학문으로 남아있다. 이는 먼저 물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경이로운 자연 현상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며, 나아가 인간의 머릿속에서 성립된 일관성 있는 체계를 통해 이렇게 경이로운 자연현상을 예측해내는 인간 능력의 놀라움 때문이라 하겠다.

by down | 2008/04/12 13:10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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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onteil at 2008/06/17 22:50
글 잘 읽고 가요
Commented by wolga at 2008/08/29 22:31
전 진리가 무엇인지 온전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가까이 갈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주관이 담겨있지만, 좋은 모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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